불륜의 틈에서 피어났지만 끝내 이름에 붙이지 못한 감정
왕가위의 영화 <화양연화>를 처음 보면, 많은 사람이 ‘불륜 영화’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립니다.
주인공인 차우(양조위)와 수리첸(장만옥)은 각각 배우자의 외도를 알게 된 뒤, 같은 아파트 복도에서, 좁은 골목에서, 비 오는 길목에서 자꾸만 마주치면서 서서히 가까워지게 됩니다.
설정만 놓고 보면 충분히 드라마틱하게 불륜으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인데, 영화는 의도적으로 그 길을 살작 비켜갑니다.
둘은 서로를 위로하고, 상대의 배우자가 어떻게 만났을지 연기해 보다가,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외로움과 결핍을 확인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선(관계를 가지지 않음)을 넘지는 않습니다.
이 관계는 “사랑입니다”라고 선언되는 순간보다, “이건 사랑이 아니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순간들이 더 많이 쌓여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화양연화>를 보고 있으면, 이 둘이 실제로 어디까지 갔는지가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중요한 건 그들이 공유한 시간이 얼마나 간절하고 조심스러웠는지, 그리고 그 감정을 끝내 자신의 삶 안에서 어떻게 처리하고 흘려보냈는지입니다.
영화 속에서 차우와 수리첸은 계속해서 순간의 타이밍을 놓칩니다. 만나기로 한 날에 조금 늦게 도착하기도 하고,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서고, 호텔 방 앞에선 걸름을 멈춥니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아름다웠을지도 모를 가능성’으로만 남기를 택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에서 많은 관계가 허무하게 스쳐 지나가듯, 이 영화 속 인연도 정확히 정의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인생 깊숙한 곳에 흔적을 남기고 지나갑니다.
그 모호이 이 작품을 오랫동안 생각나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담배 연기와 비 내리는 골목, 아름다운 영상이 기억나는 영화
<화양연화>를 이야기할 때, 화면 얘기를 빼놓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스토리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도, 장만옥이 쳐진 어깨로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 좁은 복도에서 서로를 스치듯 지나가는 장면,
노란 불빛 아래 비에 젖은 골목에서 우산을 나란히 쓰고 서 있는 장면은 희안하게 오래 남습니다.
이 영화는 대사가 아니라, 색채와 동선, 음악과 슬로모션으로 감정을 표출합니다.
차우와 수리첸은 대부분의 시간을 좁은 공간에서 보냅니다.
회사 복도, 아파트 계단, 국수집, 여관 방, 골목 모퉁이 같은 곳들이죠.
이 공간들은 전혀 로맨틱하지 않은 일상의 장소인데, 카메라가 그것들을 비스듬히, 느리게, 반복해서 담아내면서 어느 순간 ‘두 사람만의 세계’처럼 변해버립니다.
복도에서 마주쳤다가, 그냥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지나치는 장면이 몇 번이고 반복됩니다.
시점과 프레임이 약간씩 달라질 뿐인데, 같은 공간이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설레고, 때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이 답답해 보입니다.
담배 연기는 그대로 화면을 가로질러 흐르고, 카메라는 그 뒤에 가려진 눈빛과 표정을 끝까지 잡아내지 않습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빈 곳을 상상하게 만드는 셈 입니다.
여기에 반복해서 깔리는 음악(‘Yumeji’s Theme’ 같은 곡들)이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보여줍니다.
마치 실제 사건이라기보다는, 오래된 기억 속 한 장면을 꺼내어 보는 듯한 느낌이죠.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이라기보다 “기억을 체험하게 하는 작품”에 더 가깝다고 느껴졌습니다.
극장 불이 다시 켜졌을 때, 줄거리를 정리하기보다 한동안 그 노란빛과 붉은 드레스, 비 내리던 골목의 공기만 머릿속에서 맴도는 경험을 하게 되니까요.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지난 뒤에야 알게 된다.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제목은 해석면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 로 직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속 인물들은 정작 자신들이 그 시간을 살고 있을 때, 그게 그렇게 소중한지 잘 모릅니다.
차우와 수리첸은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각자의 배우자에게 상처받은 상태에서, 잠깐 서로에게 기대어 숨을 고를 뿐입니다.
둘 다 상대를 위해 뭔가를 포기하거나, 인생을 통째로 바꿀 용기까지는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관계는 아주 짧게 타오르다 미완의 형태로 꺼져 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훌쩍 지나고 나서,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 시기를 떠올립니다.
차우가 앙코르와트의 벽 틈에 비밀을 속삭이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정서를 상징적으로 압축해 보여 줍니다.
말로 하지 못한 마음, 그때는 차마 붙잡지 못했던 감정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서서히 드러나는 순간이죠.
<화양연화>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잔인한 영화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웠던 때는, 늘 지나가고 나서야 알게 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키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그게 꼭 불행한 일만은 아니라고도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완성되지 못한 관계,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 인연이었더라도, 그 순간 진심으로 서로를 마주했던 시간이 있었다면, 그 기억만으로도 인생의 한 부분은 충분히 빛날 수 있다는 식으로요.
요즘 기준으로 보면 느리고, 답답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영화지만, 한 번쯤 감정의 속도를 화면에 맞춰 천천히 늦춰 보고 싶을 때, 그리고 예전에 스쳐 지나간 어떤 사람이나 시간을 떠올리게 되는 날에 꺼내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보고 난 뒤, 각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나만의 화양연화”를 한 번 떠올려보게 만드는 영화라는 점에서, 시간과 함께 더 깊어지는 명작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