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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의 설렘과 잔잔해서 좋았던 영화

by jay kimu 2026. 1. 5.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처음 알게 된 건 포스터 때문이었다.

지하철 안 광고에서 두 주인공이 살짝 어색하게 마주 보고 서 있는 사진을 봤는데, 다른 로맨스 영화 포스터처럼 과하게 로맨틱한 포즈도 아니고, 그렇다고 차갑게 멋을 부린 느낌도 아니라 이상하게 눈에 오래 남았다.

 

그때는 그냥 “또 하나의 일본 청춘 멜로겠지” 하고 넘겼는데, 어느 날 넷플릭스를 뒤적이다가 이 제목을 다시 보게 됐고, 큰 기대 없이 틀어 놓았다.

 

그런데 막상 보니,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고,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 영화였다.

화려한 반전이나 거대한 사건보다는, 누군가를 처음 좋아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 감정이 차곡차곡 쌓여 가는 순간들을 세심하게 따라가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은 정말 소박하다. 전철 안에서 그림 공부를 하러 다니는 대학생 타카토시가 한 여자에게 한눈에 반하고, 잠깐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그 인연을 붙잡기 위해 용기를 내어 말을 건다.

 

이 한 번의 용기가 두 사람의 시간을 완전히 바꿔 놓는 출발점이 된다.

둘은 조금씩 같이 걷고, 같이 밥을 먹고, 작은 대화를 나누면서 서서히 가까워지는데, 이 과정이 요즘 로맨스 영화에 비하면 굉장히 느린 호흡으로 펼쳐진다.

 

그런데 그 느림이 오히려 좋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순간, 괜히 말머리를 돌렸다가 다시 돌아오는 대화, 서로를 더 알고 싶으면서도 너무 들이대기 싫어 눈치를 보는 표정들까지 그대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다 보면, 마치 내 옛날 연애담을 멀리서 구경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던 건 ‘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 멜로 영화 특유의 과하게 감정을 밀어붙이는 연출을 떠올리면 일단 부담부터 느끼게 되는데, 이 영화는 꽤 절제된 톤을 유지한다. 대사도 날이 서 있지 않고, 음악도 장면의 감정을 슬쩍 밀어 올리는 정도에 머무른다.

 

그렇다 보니 화면에 비치는 건 결국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교토의 거리, 기차역 플랫폼, 강가와 다리, 그런 아주 평범한 장소들이다. 그런데 그 평범한 공간들이 두 사람의 감정에 물들면서 조금씩 특별해진다.

 

우리는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 번쯤은 가지고 있다. 어떤 길, 어떤 카페, 어떤 버스 노선이 그 사람과의 기억 때문에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것. 이 영화는 그런 기억의 결을 잘 알고 있는 작품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반대로 흐르는 사랑과 늦게 이해하게 되는 장면

이 영화가 단순한 캠퍼스 로맨스에서 그치지 않는 이유는, 두 사람의 시간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는 독특한 설정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이미 유명한 설정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스포일러에 해당할 수 있으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가야 할 것 같다.

 

타카토시에게는 우리가 사는 것과 똑같이 시간이 앞으로 흘러간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고, 그다음 날이 찾아온다.

그런데 히로인 에미의 시간은 그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에미의 입장에서 보면, 타카토시와의 첫 만남은 사실 마지막에 가까운 날이고, 타카토시가 기억하는 둘의 첫 데이트는 에미에게는 이미 수십 번의 만남 끝에 찾아온 “또 하나의 하루”일 뿐이다.

겉으로 보이는 건 똑같은 ‘오늘’이지만, 두 사람이 그날에 붙여 두는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이 사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면, 관객은 자연스럽게 앞부분을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하게 된다. 처음 봤을 땐 그냥 수줍은 여자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에미의 행동들이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타카토시가 “우리 또 보자”라고 말할 때, 에미는 이미 그 말의 끝을 알고 있다.

내일이 오면, 자신에게는 어제가 될 것이고, 그 어제에서 오늘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타카토시에 대한 기억은 점점 먼 과거로 밀려난다.

 

이 불균형을 에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타카토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사랑에 빠져 들어간다.

누군가는 매일이 새롭고, 누군가는 매일이 이별에 가까워지는 시간인 셈이다.

이 구조가 설명만 들을 땐 약간 머리가 복잡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감정으로 먼저 와 닿는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에미가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거나, 작은 부탁 하나에도 유난히 간절한 표정을 짓는 장면들이었다.

타카토시는 그 모습을 보며 단순히 “원래 조금 눈물이 많은 성격인가 보다”라고 생각하지만, 관객은 나중에야 그 표정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에미에게는 그 날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어느 시점인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남아 있는지가 정확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카토시가 한껏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의 약속을 잡을 때, 에미는 속으로 “그 내일이 나에게는 이미 지나가 버린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채로 웃어야 한다. 이 모순된 감정이 에미의 눈빛과 몸짓에 고스란히 묻어 나와서, 영화를 두 번째로 볼 때는 같은 장면에서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런 시간의 비대칭성은 결국 사랑의 비대칭성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보통 연애를 할 때 “서로 똑같이 사랑하자”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런 순간은 거의 없다. 누군가는 조금 더 빨리 상대를 좋아하게 되고, 누군가는 조금 먼저 마음이 식기도 한다.

 

영화 속 타카토시와 에미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이제 막 시작인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미 여러 번의 고민과 눈물을 지나온 끝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영화의 반전은 단순히 “사실은 이런 설정이 숨어 있었다” 하는 지적인 놀라움이 아니라, “아, 그래서 사랑이 그렇게 아팠구나” 하고 돌이켜 보게 만드는 감정적인 반전으로 다가온다.

영화가 막이내린뒤, 한동안 멍하니 앉아서 예전에 놓쳐 버린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뜻한 계절에 어울리는 스토리 감성적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를 떠올리면 유난히 가을 끝자락이나 초겨울의 공기가 같이 떠오른다.

해가 조금 빨리 지고, 저녁 공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할 때, 집에 가는 길에 일부러 한 정거장 먼저 내려서 천천히 걸어 보고 싶어지는 그런 날씨 말이다.

영화 속 교토의 풍경이 딱 그런 계절감을 품고 있다.

 

붉게 물든 나뭇잎, 차분한 골목, 조용히 지나가는 열차와 플랫폼, 다리 위를 건너는 사람들의 뒷모습까지, 과하게 예쁘게 찍으려 하기보다는 그냥 그 도시가 가진 호흡을 담담히 보여 주는 쪽을 택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관광 안내 영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 녹아 있는 여행기를 훔쳐본 기분이 든다.

언젠가 교토를 가게 된다면, 이 영화에 나왔던 길들을 일부러 찾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스토리의 전개 속도가 빠른 편이 아니다 보니, 자극적인 전개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처음엔 조금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마음의 속도를 낮추고 나면, 이 영화의 매력이 서서히 드러난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사소한 부탁, 작게 건네는 고백 하나에도 묘하게 진심이 느껴진다.

타카토시의 서툰 직진과, 에미의 조용한 수용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이런 연애 한 번쯤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저런 사람을 그때 놓친 게 아쉽다”는 후회도 슬쩍 끌어올린다.

 

특히 이미 사회생활을 몇 년쯤 한 뒤에 이 영화를 보면, 대학 시절이나 스무 살 초반의 마음 상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때의 순진함과 무모함, 그리고 모든 만남이 특별해 보이던 감각 말이다.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사람을 꼽아 보자면, 우선 순정 멜로를 좋아하는 분들이 가장 잘 맞을 것 같다.

극적인 고백 장면보다는, 같이 전철을 타고 창밖을 바라보거나, 아무 말 없이 길을 걷는 시간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요즘 여러 일들로 마음이 지쳐 있는 분들에게도 어울리는 영화다.

 

거창한 위로나 교훈을 주려 하지 않고, 그저 “이런 사랑도 있었다”는 하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줄 뿐인데, 그 담백함이 오히려 큰 위로가 된다. 사랑이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간이 의미 없었던 건 아니라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마지막으로, 타이밍 때문에 아쉬웠던 인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너무 늦게 좋아하게 됐거나, 너무 일찍 포기해 버렸거나, 서로의 시간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지나가 버린 관계 말이다.

 

타카토시와 에미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그때의 나와 그 사람에게 조금 더 따뜻했어야 했나, 아니면 그 정도면 충분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 한쪽이 살짝 저릿해진다.

 

그런 감정을 조용히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조용한 밤에 이 영화를 한 번쯤 틀어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가 끝나갈 즈음, 당신도 아마 자신만의 “내일의 어제”를 하나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