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성매매 여성이 작은 분식집 사장님이 되었다.
영화 <치히로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바닷가에 있는 작은 동네, 그 안의 허름한 분식집, 그리고 그 가게를 지키는 한 여자, 치히로.
하지만 이 인물의 이력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치히로는 과거에 성매매 업소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고, 지금은 그 과거를 숨기지 않은 채 조용히 분식집을 운영하며 살아갑니다.
영화는 이 설정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그런 과거가 있는 사람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만 시선을 고정합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의 내력에 대해 궁금해하고 수군대기도 하지만, 치히로는 딱히 변명하지도, 스스로를 미화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만든 도시락과 음식으로 사람들에게 밥을 건네고, 우연히 마주치는 이웃들의 삶에 슬며시 끼어듭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치히로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묘한 거리감과 따뜻함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남을 너무 깊게 파고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관심하게 선을 긋지도 않는 그 미묘한 지점이 이 영화의 분위기를 결정합니다.
‘전직 성매매 여성’이라는 자극적인 표면을 지나, 결국 지금 이 사람은 어떤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가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차분하게 쌓입니다.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만나 부딛히며 남기는 이야기
<치히로상>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조금씩 어긋나 있거나, 어딘가가 비어 있는 사람들이죠.
가족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아이, 집과 학교 사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청소년, 외로움에 익숙해져 버린 노인까지,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람들은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현실 어딘가에 실제로 있을 법한 모습들을 하고 있습니다.
치히로는 이런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결코 “도와주겠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대신 도시락 하나를 건네거나, 말없이 옆에 앉아 있어 주거나, 짧은 산책을 함께 하는 정도로만 곁을 줍니다.
그래서 그 관계는 명확하게 분류되지 않고, 뭐라고 붙여지지도 않습니다.
그저 어느 겨울날, 혹은 어느 여름날, 짧게 스쳐 지나간 인연으로 남을 뿐이이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느슨한 연결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위로처럼 다가오게 됩니다.
우리가 실제로도 누군가의 인생을 극적으로 구해내기보다는, 아주 잠깐만 곁에 있어 주고,
그 후로는 서로의 소식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치유’라는 단어를 크게 말하지 않지만,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 쯤에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는 느낌을 남깁니다.
사람은 어던 과거를 가졌든 과거의 상처를 잊고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잡는 일이 참 많지만 이 영화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특히 치히로상의 밝고 긍정적이고 웃는 모습이 참 기억에 남으면서 나도 그와같은 사람과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조용한 호흡과 긴 여운이 남는 감성적인 일본영화
속도감 있는 전개나 강렬한 반전, 과장된 감정 표현을 기대한다면 <치히로상>은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바로 그 느린 호흡에 있습니다.
카메라는 치히로가 거리를 걷는 뒷모습,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옆모습, 분식집에서 묵묵히 도시락을 싸는 손동작을 오래 붙잡습니다.
그 사이사이에 들어오는 짧은 대사와 주변 인물들의 표정이 쌓이면서, 관객은 어느새 이 동네의 공기와 시간에 적응하게 됩니다.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바다와 골목, 낡은 간판 같은 풍경들은 일본 영화 특유의 소소한 정서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특히 잘 맞을 만한 요소입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치히로라는 인물을 특별한 영웅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조용한 확신을 전한다는 점입니다.
과거가 어떻든, 완벽한 사람이 아니어도,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따뜻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 영화 전체를 설명합니다.
넷플릭스에서 가볍게 틀어 놓았다가, 어느새 엔딩 곡까지 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루가 괜히 버거웠거나 사람에 지칠때 즘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보고 싶을 때 한 번 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