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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지로의 여름, 아이와 어른이 함께 성장하는 여름의 기억

by jay kimu 2026.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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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지로의 여름》은 누구나 한 번쯤 지나온 어린 시절의 감정을 다시 꺼내 보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성장 과정에서 겪는 외로움, 웃음, 기대와 실망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순간들을 ‘여름’이라는 계절에 담아 보여주죠.

 

어릴 때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아이와 아저씨가 함께 떠나는 조금 엉뚱한 여행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다시 보면, 그 안에 숨어 있는 건 단순한 추억담이 아니라 관계의 온도,

그리고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에 대한 질문입니다.

 

오늘은 기쿠지로의 여름이 전달하는 감정 구조, 히사이시 조의 음악, 그리고 어른의 성장을 중심으로 왜 이 영화가 시간이 지나도 다시 보게 되는 작품인지 설명해 보겠습니다.

1. 기쿠지로의 여름이 하고싶은 이야기

기쿠지로의 여름이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 영화가 특별한 사건보다는 ‘여정 자체’를 이야기의 주제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겉모습만 보면, 엄마를 찾아 떠나는 소년 마사오와 별수 없이 동행하게 된 아저씨 기쿠지로가 주인공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영화가 끝나고 나면 관객의 기억 속에 가장 또렷하게 남는 건,

어디에 도착했는지가 아니라 길 위에서 오고 좋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입니다.

 

여름이라는 계절은 여기서 중요한 장치로 쓰입니다.

방학, 뜨거운 햇살, 느슨해진 일상, 어쩌면 약간의 권태 그리고 여름 특유의 색깔은 배우들의 감정 변화에 자연스러운 표현를 합니다. 마사오의 순진한 기대와, 기쿠지로의 투박한 무심함이 계속 부딪히면서 둘 사이의 거리감이 아주 조금씩 줄어드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주죠. 이때 영화는 감정을 대사로 설명하기보다는 표정, 행동, 어색한 침묵 같은 것들로 보여집니다.

 

예를 들어, 마사오가 실망했을 때 그 옆에 서 있는 기쿠지로는 딱히 거창한 말을 해주지 않습니다.

대신 같이 뜨거운 길을 걸어가거나, 어설픈 장난을 치고, 괜히 엉뚱한 행동을 하면서 분위기를 돌립니다.

이건 현실의 어른들이 자주 쓰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서툴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네는 거죠.

이런 소소한 행동들이 쌓이면서, 관객은 둘 사이에 단단한 정이 생겨나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보게 됩니다.

결국 이 영화의 감정 구조는 큰 사건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작고 사소한 순간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며 관계를 변화시키는 과정 자체가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도, 초록색 여름의 공기와 함께 영화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2. 기쿠지로의 여름 속 음악이 남기는 잔잔함.

기쿠지로의 여름을 이야기할 때 히사이시 조의 음악, 특히 메인 테마인 ‘Summer’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화보다 이 음악이 먼저 떠오를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기죠.

단순한 피아노 선율로 시작하는 이 곡은, 처음 들을 땐 밝고 경쾌하게 느껴지지만,

곡을 따라가다 보면 묘하게 가슴이 찡해지는 지점을 만납니다.

 

그 이유는 이 곡이 여름의 따뜻함과 쓸쓸함을 동시에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어린 시절의 방학처럼 자유롭고 즐거운데, 그 끝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이 선율 속에 스며 있는 느낌입니다.

 

피아노와 현악이 얇게 겹쳐지는 구간에서는, 영화 속 마사오와 기쿠지로가 함께한

작은 순간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 일종의 ‘기억 보정’이 일어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음악이 영화를 떠나 독립된 감성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는 점입니다.

 

피아노 학원이나 버스킹 공연, 각종 연주회 레퍼토리에서 Summer는 여전히 자주 연주되는 곡입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이 곡을 듣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죠.

음악 하나가 특정 장면을 넘어서서, 개인의 여름 추억과 연결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는 셈입니다.

 

결국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영화 속 장면을 단순히 받쳐 주는 배경음이 아니라,

그 자체로 관객의 감정을 이끌어 가는 또 하나의 주인공입니다.

 

대사가 없어도, 심지어 화면을 보지 않아도, 음악만으로 기쿠지로의 여름이 갖고 있는

분위기와 정서를 떠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오랫동안 기억될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곡 OST 이기도 합니다. 

3. 기쿠지로의 여름이 보여주는 ‘아이를 통한 어른의 성장'

표면적으로 보면 기쿠지로의 여름은 아이의 성장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게 들여다보면, 이 영화는 오히려 어른의 성장에 더 많은 무게를 두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마사오의 여정에 동행하게 된 기쿠지로는 처음엔 전형적인 ‘철없는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성실하지 않고, 남을 챙길 줄도 잘 모르는 인물처럼 보이죠.

그런데 마사오와 함께 길을 떠나면서, 기쿠지로는 아이의 결핍을 계속해서 마주하게 됩니다.

 

엄마를 만나고 싶어 하는 순수한 마음, 거절당했을 때의 상처, 그

리고 그래도 다시 기대하게 되는 마음까지.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기쿠지로는 조금씩 태도가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함께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는 마사오의 실망을 막아 주려고 애쓰고,

어떻게든 웃게 만들려고 몸을 사리지 않습니다.

 

이 변화는 영화에서 크게 강조되지 않습니다.

 

누가 “당신 많이 변했네요”라고 말해 주지도 않죠.

하지만 관객은 그 미세한 변화들을 하나씩 목격하게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어른도 여전히 미완성의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성장의 과정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곁을 지키면서,

그 사람의 상처를 함께 겪으면서 조금씩 나 자신도 달라지는 거죠.

 

그래서 기쿠지로의 여름은 단순히 “어릴 때 보면 귀여운 영화”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인이 되어 다시 볼수록, 기쿠지로라는 인물을 통해 “나는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어떤 어른으로 남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아이의 성장에만 시선을 두지 않고,

어른의 변화와 책임, 그리고 서툴지만 진심 어린 마음까지 함께 담아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세대를 넘어 공감대를 얻습니다.

기쿠지로의 여름이 다시 보고 싶어지는 이유

정리해 보면, 기쿠지로의 여름은 삶의 소소한 결을 복잡하게 꾸미지 않고 담담하게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여름이라는 배경, 아이와 어른의 서툰 동행, 그리고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어우러져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장면들을 만들어 냅니다.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 차이,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감정의 여백이 차분하게 쌓여 갑니다.

그래서 힘들게 분석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르는 영화가 됩니다.

 

잠시 일상을 멈추고 어린 시절의 마음을 다시 떠올려 보고 싶을 때,

혹은 “어른답게 산다”는 말의 의미가 버겁게 느껴질 때, 기쿠지로의 여름은 조용히 곁에 두고 다시 꺼내 보기 좋은 작품입니다.

 

한 번쯤은, 여름밤에 불을 살짝 낮추고 이 영화를 다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익숙한 장면들 속에서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감정들이 새롭게 다가오면서 말이죠.